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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기희칼럼 [ 동서교차로 ]

투이호아의 선인장


‘Desert Angel' by Simon Bull

어머니가 그리우면 육전을 굽는다 . 지금은 보는데로 먹어치우는 흡입형 잡식가이지만 어릴적엔 입이 짧아 어머니 속을 섞혔다 . 시골에서 흔한 채소는 안 먹고 소고기 엷게 저며 계란물 뭍혀 노릇노릇 지져낸 육전을 제일 좋아했다 . 육소간이 없는 삼거리 시골 마을에서 육전을 먹을 수 있을 때는 제삿날이나 잔치날 뿐이다 .
내 생일날 , 파출소 앞 게시판에 내 그림이 붙는 날 , 창녕이나 마산에 5 일장이 서는 날 , 어머니는 소고기 반 근 사서 밤 늦게 전을 부쳐 주셨다 . 마른 장작이 탁탁 불 지피는 소리를 내는 동안 육전이 익기 기다리는 내 얼굴은 홍시처럼 달아 올랐다 . 육전은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내 유년의 젖줄과 같다 .
이번 자문위원회 베트남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추억담과 투이호아 주민들과 정병장의 만남일 것이다 . 월남전 당시 투이호아는 농촌도시로
메콩강의 델타지역 홍강 델타지역과 함께 월남의 3 대 곡창지대로 일컬어졌다 .
근교 안남산맥 지류의 산들이 암석과 정글로 뒤덮혀 있어 베트콩의 물자공급과 은신처로 일명 ' 호지명 루트 ' 라고 불리며 월맹군 게릴라전의 보급로로 활용됐다 . 정병장은 1967 년 25 세 나이로 십자성부대 탄약보급 책임을 맡고 투이호아에 배치됐다 . 사람 냄새 뭉클한 의리의 사나이 정병장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(?) 놀며 의리의 따이한 이미지를 심어준 건 안 봐도 비디오 !
20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투이호아 해안의 시골마을 주민과 정병장은 끈끈한 사랑과 신뢰를 나누었다 . 월남이 패망하고 시간은 흘러흘러 날렵하던 정병장도 반백의 노장이 됐지만 세월은 아프고 그리운 추억마저 앗아가지 못했다 .
무려 40 년이 지난 후 , 반백의 노신사가 된 정병장은 당시 찍은 흑백 사진 한장을 유품처럼 들고 2007 년 투이호아의 시골마을을 찿아나섰다 .
사진 속 마을 사람들은 사라지고 이장 마저 유명을 달리했지만 이장 딸이 용케도 정병장을 알아봤다 . 이장은 강제노역하다 죽었고 사진 속 아이들도 이미 50 대 후반이 돼 있었다 . 떠나면서 정병장은 꼭 돌아 온다고 마을 사람들과 약속 했었다 . 그리고 40 년이 지난 후 그는 그 약속을 지켜냈다 .
그는 매년 동네 잔치를 위해 돼지 3 마리 살 돈을 보낸다 . 월남에서는 구정 15 일 전에 돼지 잡아 마을 축제를 벌리는 풍습이 있다 . 노병장은 눈 감는 날까지 돼지 살 돈 보내기를 다짐한다 .
50 년 만에 다시만나 그리운 사람들과 보낸 이틀은 노병의 가슴을 적시게 했다 . 마을 사람들은 씨암닭 잡듯 노병의 귀환을 위해 큰 잔치를 벌렸다 . 아 ! 전쟁의 상흔을 딛고 아름드리 자란 성인장이 피워올린 한송이 꽃 . 정병장은 끝내 울고야 말았다 .
선인장은 덥고 메마른 곳에서 자란다 . 물 없이도 살아남기 위해 잎 대신 가시를 키운다 .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도록 사는 게 힘들어도 한 송이 찬란한 꽃 피우기위해 힘든 생을 꿋꿋이 버텨낸다 .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모른다 . 살아있는 자 만이 50 년의 세월을 견뎌낸 선인장 꽃을 볼 수 있다는 것 뿐 .
육전을 먹을 때마다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먹는 것처럼 투이호아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따이한 정병장이 보낸 사랑을 먹는다 .
‘역사를 잊은 국민에겐 미래는 없다'는 말을 새기며 ‘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의 오늘은 삭막한 바람이 분다'라고 적는다 .
고마워할 것들이 너무 많아 고마운 지도 모르고 산 시간들을 나무라며 당신과 나와 , 살아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해피 땡스기빙 !

미주 중앙일보 11.23.17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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