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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기희칼럼 [ 동서교차로 ]

일그러진 초상


‘Alina' by Hessam

새벽 마다 제일 먼저 이 부부를 만난다 . 두 사람은 화장실 작은 벽에 걸려있다 . 그림 속 여자는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아는둥 마는둥 생뚱맞은 표정이고 별로 폼 안나는 콧수염을 달고 있는 남자는 이유 모를 미소를 짓고 있다 .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묘해서 볼수록 별의별 생각이 들게 한다 . 그들이 부부라는 건 내 추측이다 . 행복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행하지도 않고 곁에서 오래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부부라는 내 생각 때문이다 .
이 부부의 초상화를 볼 때 마다 이상의 ' 날개 ' 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떠올린다 . 매춘으로 생활비를 버는 아내와 그 돈으로 외출하는 , 고뇌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 닮았다 .
이 그림은 15 년 동안 빛을 못 보고 창고 먼지 속에 갇혀 있었다 . 우선 출신 성분에 문제가 있어 탐탁치 않았다 . 타이완에서 권력 잡고 잘 나가던 시동생에게 중견 화가가 바친 뇌물을 내게 넘긴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.
스케치가 촌스럽고 어린애 크레용화 처럼 색깔 배합이 잘 안된데다 싸구려 액자가 맘에 안 들었다 . 크고 능수능란하고 화려하며 세련된 그림에 익숙해져 부귀영화에 초점을 맞출 때 이 그림은 볼품 없는 소품에 불과 했다 . 근데 그 그림이 어느날 부활 했다 . 삶이 현실에 만족하는 안분지족으로 방향을 틀고 단순하고 천박하며 투박한 아름다움이 편안하고 익숙한 다정함으로 다가오면서 그림이 내 가슴으로 날아든 거다 .
그림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. 내 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. 거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이 진짜 내 모습일까 . 초상화를 그리면 화가의 눈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. 내 이름 석자가 거명 될 때 사람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나의 모습이 내 초상화의 진정한 모습일 지 모른다 .
초상화는 특정 인물을 묘사하는 회화의 한 부분이다 . 초상화의 기본은 우선 닮게 그리는 것이다 . 그래도 초상화 주문 받을 땐 실물 보다 조금 예쁘게 그리는 게 센스다 . 조금 덜 닮아도 예쁘게 그려주면 만족한다 .
실물 보다 두 배나 큰 전신 초상화 의뢰를 받았을 땐 정말 긴장했다 . 겉 모양만 닮으면 죽은 그림이다 . 주인공의 삶과 인생 , 생의 희로애락을 닮아내야 명작을 탄생시킨다 . 이 때 화가와 의뢰인이 서로 정신적 교감을 갖고 신뢰를 쌓은 것이 중요하다 . 함께 저녁도 먹고 사담도 나누며 사진 작가를 기용해 수백장의 편안하고 다양한 표정을 잡아낸다 .
사진에 의한 초상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초상화는 인물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르네상스 이후 개인의식이 확립되면서 회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. 라파엘로 . 티치아노 . 뒤러 . 벨라스케스 . 루벤스 . 반 다이크 등이 활약한 바로크 시대는 서양 초상화의 전성기다 . 동양의 초상화는 단순히 인물을 그리지 않고 정신세계를 표현한다 . 전신 ( 傳神 ), 즉 모양을 그리지 않고 담겨있는 뜻을 그린다 .
초상화는 드러내지 않고 드러나는 작품이 수작이다 . 주인공의 진솔한 삶 , 정직한 표정 , 가식없는 인생을 담아내야 위대한 명작이 탄생한다 . 표정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표정으로 다가와 말하게 하는 것이 위대한 예술혼이다 .
화장실에 걸린 일그러진 부부의 초상화는 말한다 . 얕은 속임수 쓰지 말고 화려한 빛깔로 유혹하지 않고 담백하고 진솔한 언어로 오늘을 살 것인지를 . 그리고 내가 나에게 묻는다 . 투박하고 조금 불편해도 마음이 가는 편한 길로 ,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.

미주 중앙일 6.8.18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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